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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결코 상관없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영화 <다음 소희>

by 포토크리에이터 Bear 2023. 2. 27.

 

영화 <다음 소희>를 관람했습니다.

배두나 배우가 나오는 영화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들이

적극 추천하여 보게 됐는데요.

 

우선 최근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먼저

꼭 봐야할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의 완성도, 주제 등을 포함한

내적인 가치와 한국 영화계에서

이 영화가 가지는 외적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인물과 간단한 줄거리

고등학생인 ‘소희’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현장실습에 나가게 됩니다.

담임 선생님은 대기업에 취업하는거라고 했지만

실상 그 회사는 하청에

하청을 맡고 있는 콜센터였습니다.

 

학교 취업률과 본인의 실적을 위해

버텨야 한다고 담임이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고,

어려운 가정환경과 첫 취업이라는 무게감에

소희는 모진 대우를 받아도

회사에 적응해나갑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사내 최고 실적을 달성하지만,

정규직이 아니어서 급여가 적거나

인센티브를 몇달 뒤에 주는 등

회사의 대우에 불만을 표해도 비교와 멸시로 대하는

상사의 태도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게 됩니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무력함을 깨달은 소희는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소희의 죽음 이후 이야기는

형사 ‘유진’을 중심으로 전환됩니다.

 

'소희' 배우 김시은

유진은 ‘소희’가 왜 자살을 했는지

조사하면서 콜센터에 이상한 점이

있음을 감지합니다.

 

전 팀장이 회사의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는

탄원과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음에도

그에 대한 조치가 없었던 점,

자살을 하기 전까지 소희의 상태에 대해서

학교에선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은 점 등

 

어른들이 고등학생에게 무거운 짐을 쥐어주고선

실적만 바라보고 방치했다는 정황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유진은 소희가 죽은 이유를 추적하며

우리 사회의 뒤틀린 점을 포착합니다.

 

'유진' 배우 배두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

영화 <다음 소희>는 집단이 이익만을 추구할 때

노동자인 개인이 받는 피해에 대해 조명합니다.

 

유진이 담임부터 시작해서

학교의 미흡한 관리 체계를 문제 삼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업을 상대로

학교가 을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취업율을 바탕으로 학교에 자금을 지급하는

교육부의 방침을 알게됩니다.

 

위를 향할 수록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경쟁 구도 속에 놓여져 있기에 사회와 제도가

개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뒷전으로 미루게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앞으로 더욱 행복하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서로를 상처주고

일에 매몰되며 몸과 마음을 상하게 만듭니다.

 

대체 왜 소희는 자살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유진을 따라가 보면 그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특정한 누군가가 빌런이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잘못됐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경쟁 구도 속에서 개인은 소모품 취급되고

높은 직급을 가진 누구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데요.

누구나 겪었을 테고, 또는 나 자신이

그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이었던 경험도 있을 겁니다.

 

제도와 체계가 아무리 억압하고 압박해도

개인은 그것을 버텨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집단이 실패자 혹은 인성파탄자로 취급하며

추방을 시킵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점은 소통입니다.

 

영화는 소희가 연습실에서

홀로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댄서를 지망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희는 춤을 추는 것을 좋아했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하지만 소희가 춤을 좋아한다는 것을

가족은 전혀 몰랐습니다.

 

나아가서는 소희가 정말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소희가 가족과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속내를 숨기고

감내해야 할 상황이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만약 소희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집니다.

 

 

 

 

 

노동자를 위한 영화

<다음 소희>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영화로

국내에선 좀처럼 나오진 않던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면 오랜 세월 노동자를 그린 영화를 만든

‘켄 로치’ 감독이 떠오릅니다.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었던 그의 2016년 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속의 대사를 살펴 보겠습니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위 대사는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 내용입니다.

 

문장을 살펴보면 마치

소희의 처지를 나타내는 듯 합니다.

 

소희의 이름은 회사의 실적표에 새겨져

숫자의 크기로 대우를 받습니다.

 

소희의 목소리는 회사의 이름 뒤에

가려져 온갖 인신 공격을 받아냅니다.

 

 

 

 

 

 

영화의 만듬새에 대하여

영화 전반에 디테일한 연출이 담겨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소희가

회사 건물 외부에 있는 계단 한 켠에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소희와 동료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 배경으로 다소 낡은 집들과 그 뒤로

하늘에 닿을 듯한 아파트들이 화면을 채웁니다.

사는 곳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신분제와

그 대비를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장면이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전반적으로

톤이 잘 잡혀있다고 보여집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소희의 부모가

시신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는데요.

천을 걷어내고 소희의 얼굴을 확인할 땐

넋이 나가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부검 신청서를 보자 현실임이 느껴졌는지

두 사람은 오열하기 시작합니다.

 

시신이 아닌 서류를 보며 딸의 죽음을

자각하는 모습이 더욱 현실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쉬운 점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유진이 이렇게까지

수사를 하는 동기에 대해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요.

 

영화 중간에 유진에게도 어떤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유진이 보여주는 행동은 ‘남 일 같지 않은’ 감정으로

보여지지만 어떤 상호 작용에 의해서

그렇게 된건지 의문이 듭니다.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이 보장되었으면 하는 바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2017년 1월, 전주의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나간 고등학생이 3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모티브로 한 <다음 소희>는 소희같은 아이들이

다음엔 나오지 않길 바라는 감독의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저널리즘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모범적인 언론 영화로

평가 받는 명작입니다.

 

그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다음 소희>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즘이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지루하게 전개되진 않습니다.

 

예상보다 이야기의 호흡이 빨랐고,

짜임새 있는 각본과 연출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가 미학적인 완성도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주장에도 충족하고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보아도

결코 가볍게 넘길 영화가 아닙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를 다소 어렵게 관람했습니다.

우선 제 주거지 근처 극장에선 상영 일정이 거의 없었고,

서울 주요 극장에서도 상영관이 많이 적었습니다.

여러 영화 채널과 극장의 소유주들이

이 영화를 더욱 소개해야한다고 봅니다.

‘한국 영화는 믿고 거른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

이렇게 올곧은 시선을 가진 영화는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이런 영화를 용케도 만들어 냈으니

제목처럼 <다음 소희>의 다음 영화도 만들어지도록

관심이 모아졌으면합니다.

 

 

 

 

 

 

한줄평

"나의 말, 손, 눈빛 하나하나가 바로 지금 여기를 지옥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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