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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헤어질 결심(2022)⎟마침내 다다른 가장 영화적인 경험

by 포토크리에이터 Bear 2023. 1. 31.

 

개인의 감상과 해석일 뿐입니다.

본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연 배경

영화는 산과 바다, 그리고

안개로 이루어진 배경이 나옵니다.

 

서래의 남편인 기도수가 산에서 죽었고

어머니의 유골은 산에서 뿌려졌습니다.

 

바다에 빠뜨려서 증거를 없애고,

바람을 피운 것이 마치 담배를 피운 것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워져 해준의 속마음을 감춥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자연은 인물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지점이자 무언갈 감추는 역할을 합니다.

 

 

인물

해준(좌), 서래(우)

해준(박해일)은 올곧은 의식을 가진 성실한 형사입니다.

어쩌면 성실함을 넘어서 일 중독처럼 보이네요.

자신의 방 한편에 피가 가득 담긴

사건 현장 사진을 걸어 놓을 정도니까요.

최연소로 팀장을 맡고 있고

파트너 후배에게 존경도 받는 사람입니다.

 

서래(탕웨이)도 자신의 일에 투철한 편입니다.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라며 일과 삶을 분명히 나누고 있고

목적을 위해 밀입국까지 하며

모진 수모도 감수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입니다.

 

둘은 여러 공통점이 있습니다.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고 놓여져 있는 물건들의

각을 잡아 정리하고 테이블을 깨끗이 합니다.

취조실에서 함께 밥을 먹고 정리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부부 사이처럼 죽이 척척 맞았죠.

 

해준이 서래에게 유명 초밥집의

비싼 도시락을 시켜 줍니다.

집에서 아내 정안에게 밥을 해줄 때,

초밥을 시키지 그랬냐고 했는데

“특별하게 먹고 싶다.”라고 대답하는 해준이었습니다.

 

 

장벽

서래와 해준. 두 사람 사이엔 많은 장벽들이 있습니다.

수사 대상이 된 서래를 감시하는 해준은

월요일 할머니 집의 유리벽, 차의 앞 유리창,

망원경의 렌즈까지 3개의 장벽

너머로 서래를 바라봅니다.

 

이 장벽들은 투명하지만 그럼에도

멀리서 볼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장벽이 투명한 만큼 해준은

서래에게 눈을 떼지 못하죠.

 

서래와 마치 한 방에 있는 것처럼 장면이 연출되고,

거칠어지는 해준의 숨소리가 지금 하는 행동은

수사가 아닌 관음임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재밌는 부분이 있습니다.

보통 A가 B를 감시하는 장면이면

감시당하는 쪽인 B를 집중적으로 보여줄 텐데,

오히려 감시하는 A, 즉 해준을 더욱 가깝게 보여줍니다.

서래를 감시하며 마음이 요동치는

해준의 감정을 더욱 잘 느껴지게 하는 장면입니다.

 

 

취조실에서 마주한 두 사람, 해준은

남편 기도수의 사건 경위를 설명하기 전에

“말씀으로 들으시겠어요? 사진으로 보시겠어요?”라고

서래에게 묻습니다.

 

서래가 “말씀.”이라고 하자

해준은 실망한 표정을 짓네요?

마주 앉아 있지만 두 사람에겐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남아있습니다.

서래와 소통하고 싶었던 해준은

표현의 제한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서래가 곧장 “사진.”이라고 답변을 바꾸자

해준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이제 장벽은 취조실에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비추는 창이 됩니다.

 

해준과 서래는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각자의 공간

영화에서 공간은 인물의 성격을 나타냅니다.

해준의 공간은 무채색이 가장 많습니다.

일 밖에 모르고 무미건조한 그의 삶과 내면을 상징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안개가 있죠.

온 세상을 회색빛으로 물들이는

안개가 해준을 덮고 있습니다.

 

안개로 덮인 공간엔 아내인 정안이 있습니다.

해준이 담배를 피웠냐고 다그치는 아내의 말이

바람 얘기를 하는 줄 알고 흠칫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내가 이전부터 직장 동료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죠.

 

부부가 서로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하듯이

안개는 시야가 불확실하고 진실이 감춰져 있습니다.

 

서래의 공간을 볼까요?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는데

산 또는 바다처럼 보이는

청녹색의 그림이 벽지로 쓰이고 있습니다.

 

인물의 상황이나 성격을 벽지로 보여주는 연출,

박찬욱 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의 특기죠.

 

산과 바다는 서래의 주요 무대입니다.

본인과 얽힌 두 번의 살인 사건이

산과 바다에서 일어났습니다.

살인 사건 현장 사진이 가득 붙어있는

해준의 벽과는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그 사진들을 떼어주는 사람이

서래라는 것도 재밌는 점입니다.

 

서래의 집에는 제법 괜찮은 가구와 책들이 있는데

서래가 사용하는 장면은 딱히 나오지 않습니다.

물건이 가득 채워져 있음에도

서래는 집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전부입니다.

아마도 남편이었던 기도수의 물건들로

가득한 집인 걸로 보입니다.

 

기도수는 자신의 모든 물건들, 심지어 아내에게까지

이니셜을 새길 정도로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소유욕은 두 번째 남편인 임호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서래에게 딱히 애정이 있다기보다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합니다.

 

남편들에게 이런 대우를 받은 서래에겐

해준이 품위 있어 보일만 하겠습니다.

 

 

서래와 해준

 

두 인물에겐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에 대한 충족을 서로를 통해 이루고 있습니다.

 

해준은 불면증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눈을 오래 감지 못해서

안구 건조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해준은 바다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해준에겐 물이 필요합니다.

눈을 적셔 주고 해파리가 되어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편안함을 주는 물이 필요합니다.

 

서래는 해준에게 안식을 가져다줍니다.

서래의 집 근처에서 감시를 하는 거리에 있는 것만으로

해준은 차 안에서 깊은 잠에 빠집니다.

 

해준을 편하게 재워주고,

사건의 실마리를 위한 힌트도 쥐어 줍니다. 

 

서래를 볼까요? 여기서 서래는 태양이라고 해보겠습니다.

해준이 안약을 넣을 때, 고개를 들어

태양을 올려보는 포즈가 됩니다.

 

서래가 태양이라면 해준이 서래를 볼 땐

안약을 넣어 눈을 적셔야 했습니다.

바다를 상징하는 인물이 물을 채워야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해준이 서래를 통해 안식을 얻듯이

서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부패한 공무원인 기도수와

금융 사기범인 임호신으로부터

갖은 고생을 다한 서래였기에

비가 세차게 내릴 때 자신이

비를 맞지 않게 해주는 남자가 필요했습니다.

 

건조해진 입술에 립밤을 바를 수 있고,

더러워진 손을 닦을 수 있게 해주는

깔끔한 남자인 해준이 필요합니다.

 

태양을 상징하지만 서래에게 필요한 것은 불입니다.

서래에겐 편하게 담배에 불을 붙일 수 있고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따뜻함이 필요합니다.

 

불과 물의 상징이 결핍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가뭄이죠.

 

생명이 깃들지 않는 가뭄의 대지처럼

그들의 인간관계는 메말라 있습니다.

 

처음 만날 때부터 해준은 서래에게 간장을 짜주고

방수 밴드와 치약을 챙겨주고, 물티슈를 건네줍니다.

 

서래 역시 해준에게 바다로 돌아간 해파리가 되어

잠에 들 수 있도록 함께 숨을 맞춰 쉬어줍니다.

 

태양과 바다, 가뭄의 결핍을 가진

두 사람은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두 인물의 상징을 정해봤습니다.

각자의 상징에 맞게 해준은 푸른색,

서래는 붉은색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쓰이는 색은 빛의 색입니다.

색온도라 불리는 개념이 있습니다.

 

빛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색을 나타내는 지표인데,

대표적으로 해질녁의 하늘색과

새벽의 하늘색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0123

서래와 해준이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서래의 옷은 붉은색에서 푸른색 쪽으로 변해갑니다.

해준과 함께 있을 때, 서래는

노란색과 주황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해준과 취조실에서 마주한 날,

집에서 홀로 해준을 생각하고 있을 땐

푸른색 옷을 입고 있네요.

 

첫 데이트하는 장면을 볼까요?

서래는 붉은빛이 도는 원피스에

푸른색 코트를 입고 있네요.

 

아직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1부에서의 서래를 향한 암시일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해준은 이전까지 안개 같은

무채색 일변의 착장에서 아마도 처음으로

색이 있는 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그것도 붉은 계열인 주황색 빛이 도는 코트를요.

 

해준과 멀어진 서래의 옷은 어떨까요?

본래의 색인 붉은색이 강하게 띈 옷을 입고 있습니다.

게다가 서래가 처한 상황이 영 좋지 않아 보이네요.

 

 

 

붕괴와 수복

 

서래는 해준이 현대인 치고

품위가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여태까지 만난 남자들이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하나하나 보이는 증거들을 통해

서래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정한 해준은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자부심 강한 형사가 사랑에 눈이 멀어

용의자를 놓쳤으니까요.

심지어 그는 이 사실을 자신만

알 것이고 증거를 인멸하라고 합니다.

 

1부에서 두 사람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준은 자신의 품위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에서 오는 것이고 스스로 그것을 져버렸기에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토로합니다.

 

여기서 문제의 대사가 나오죠.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이 대사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겠습니다.

 

 

2부에서 서래와 해준이 재회합니다.

또다시 서래가 얽힌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해준은 구두에서 다시금

운동화를 신고 사건을 수사합니다.

 

서래는 피가 가득한 현장을 싫어하는

해준이 걱정되어 현장의 피를 닦습니다.

 

이포로 근무지를 옮긴 그는 정장에 구두를 신고

면도도 잘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다시 운동화를 신고 사건을 수사하는

해준의 모습을 보니 그가 붕괴에서

회복된 건 아닐지 서래는 그를 보고 싶어 합니다.

 

2부에 들어서 서로에 대한 둘의 입장이 변했네요.

 

1부에선 해준이 장벽 너머로 서래를 바라봤지만,

2부에선 서래가 해준을 장벽 너머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해준의 태도는 부산에서와는 사뭇 달라져 있네요.

고급 초밥이 아닌 핫도그 하나를 식사로 시켜주고

파트너 후배가 과하다고 할 정도로 서래가

범인이라고 상정하고 수사를 진행합니다.

 

여기서 서래는 이 사건이

영원한 미결 사건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해준은 붕괴되지 않은 품위 있는 경찰로

되돌아가면서 미결 사건의 용의자인

자신의 사진을 벽에 걸어 두고 항상 생각할 테니까요.

 

 

이포

2부의 이야기는 작중

가상의 지역인 이포에서 이루어집니다.

 

1부에서 해준이 주말마다 만나는

아내가 사는 곳이자 그녀의 근무지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아내는

여태까지 함께한 날을 숫자로 셀 정도로

이과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죠.

 

모든 것을 가려 버리는 안개로 가득한 이포에선

해준이 서래와 헤어진 후 불면증이 악화되고

내면이 붕괴된 채로 원전은 완전 안전하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합니다.

 

하지만 서래와 재회한 곳이기도 하죠.

서래는 다소 의도적으로 이포로 왔지만

해준은 서래를 다시 마주치자

처음엔 당황했어도 이내 반가워합니다.

 

과학적인 설명을 정확히 할 수는 없지만

온기와 냉기가 혼합되어 안개가 생성되죠.

 

태양인 서래와 바다인 해준의 사이가 숨기고 싶은 관계고,

다시 만난 곳이 안개가 가득한 이포라는 점이 재밌네요.

 

 

영화는 끝을 향해 이야기가 전개되며

끝내 서래와 해준만이 영화에 남게 됩니다.

 

서래는 야밤의 산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해준에게 고백하고 입을 맞춥니다.

 

아마도 서래는 자신이 해준과

함께할 수 없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자신과 함께 있으면 해준은

붕괴된 채로 살게 될 테니까요.

 

또다시 서래가 사건의 범인이라는

확증을 갖게 된 해준은 서래를 찾지만

서래는 모습을 감춥니다.

 

 

 

이제는 서로를 볼 수 없지만,

 

서래는 푸른색의 해준에게,

 

해준은 붉은색의 서래를 찾아 좋아하는 점이 같은 바다에 당도했습니다.

 

 

서래는 해준이 깃털을 간직했던 까마귀를 묻어주듯

양동이로 모래를 퍼내어 구덩이 안에 들어갑니다.

 

파도치는 바다를 보며 병 채로 소주를

들이켜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 비장한 각오를 한 모양입니다.

해준이 말한 꼿꼿한 모습을 유지한 채로요.

 

밀물이 밀려온 바다에 도착한 해준은

서래를 찾지만 어디서도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해줬다고 하는

부산에서의 마지막 대화를 들어보는 해준.

녹음본에선 마지막에 해준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해준은 바다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대사에서 폰은

두 번의 살인 사건의 증거 그 자체인

서래를 뜻합니다.

 

“깊은 바다에 빠뜨리라”는 말은

해준의 내면 깊은 곳,

 

“아무도 못 찾게”라는 말은

그렇게 미결 사건이 되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해준은 사랑한다고 한 적이 없지만

서래는 그 말을 사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해준의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간 서래.

 

자부심 강한 경찰인 해준을 망치러 온 그의 구원자.

 

가뭄의 결핍을 지니고 있던 해준은

몰아치는 파도에 몸을 적시며 안약을 넣지 않고도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태양이 저물고 나서야.

 

마침내.

 

 

 

총평

사랑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시선을

올곧게 자아낸 영화였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이 시선은 올드보이로부터 이어지죠.

“내 삶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서로 함께 있지 않아야 각자가 사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비극을 이번에도

빈틈없는 연출로 그려냈습니다.

박해일과 탕웨이 배우의 연기도 훌륭했습니다.

이 두 배우 외에는 해준과 서래를 대체할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40대 중반에도

소년미를 보여주는 박해일 배우의 능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감정이 격앙되는 장면에선 왠지

배철수의 억양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해준은 역시 박해일 배우만이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전반의 미술과 음향, 촬영도 모두 훌륭합니다.

촬영부터 볼까요? 수직 수평을 지키며

화면 구성의 균형을 잡는 방식을 유지합니다.

이 방식을 조금 비틀면 사건의 전환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데요.

이렇게, 지켜오던 규칙을 비틀어

무언가 사건이 일어났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그 외에도 여백이 많은 공간에

피사체 하나를 놔둬 집중되게 하는 방식,

과도한 클로즈업 등 박찬욱 감독이

예전부터 보여주던 스타일입니다.

 

01

미술에선 류성희 감독과의 호흡이 여전하네요.

색을 배치하는 감각과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박찬욱 감독이 추구하는 미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스타일이 이 영화에서 무르익었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 영화는 장점이 참 많지만

음향을 특히 좋게 평하고 싶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테이블을 정리하는 소리 등

사운드의 질감이 생생합니다.

아이폰의 녹음 기능과 번역 어플을 쓰는 모습,

ASMR 같은 음향의 퀄리티를 보니

박찬욱 감독과 그 스텝들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항상 눈 여겨 보는 거 같습니다.

애플과 함께 아이폰으로 영화를 찍은 것만 봐도 그렇죠.

 

이 영화에서 가장 극대화 된 사운드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해준이 홍산오를 쏘는 총소리가 첫 번째입니다.

해준이 대치 상황에서 대화를 유도해 이어가다가

기습적으로 총을 쏴서 홍산오를 제압합니다.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두 번 봤는데 두 번 모두

같은 장면에서 관객들이 놀랍니다.

 

이전까진 전반적으로 잔잔한 소리들이었지만

이 장면에서 바로 앞에서 쏜 듯한 총소리가 터집니다.

 

두 번째는 마지막 장면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소리입니다.

여기서 정말 바다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파도 소리가 생동감 넘칩니다.

 

꼭 사운드가 보장된 극장에서 관람하길 바랍니다.

 

조연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해준의 파트너인 후배 수완은

1부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해준과 수완 둘의 대사 티키타카가 아주 찰집니다.

<완벽한 타인> 이후 배우들 간의 대사 호흡이

돋보이는 영화는 오랜만이네요.

 

능청스럽고 어딘가 모자라지만

밉지는 않은 스타일이어서

정감이 가는 캐릭터였습니다.

 

2부의 파트너인 연수는

수완의 역할을 그대로 이어 받습니다.

1부의 수완이 그랬듯이 연수도 해준에게

감성이 아닌 형사로서의 이성을

지속적으로 일깨우는 파트너입니다.

선배 형사인 해준을 많이 좋아한다는 점도 같죠.

 

조연은 이 둘 외엔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 영화는 전적으로 해준과 서래를 통해

이야기가 흘러 가기에 조연들은 명백히

이야기 진행의 요소로 작용할 뿐입니다.

이는 수완과 연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한 사람을 달리 얘기해보자면

일명 철썩이라 불리는 사철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현우 배우가 연기를 이 정도로

잘하는 배우인 줄은 몰랐네요.

취조실 장면에서 대사의 맛을 제대로 살리는데

언뜻 최민식 배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조연 분들의 연기와 비중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잘 어우러졌습니다.

 

 

항간에는 박찬욱 감독이 너무 작가주의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렇게나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

강하지만 흥행력이 보장된 배우들을 기용할 정도로

상업성도 뛰어난 감독입니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렇죠.

 

이동진 평론가와의 인터뷰를 보면 박찬욱 감독은

스스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업 영화를 예술 영화로

보이게 찍는다고 직접 밝힙니다.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은 일정 부분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자면

예술적인 표현과 잘 짜여진 이야기를

이 정도로 영상으로 풀어내는 능력은

전 세계에서 아주 흔치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영화 속에 삽입된 가수 정훈희의 곡

<안개>의 가사 일부를 인용하며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해석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돌아 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 가 다오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정훈희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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