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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어노니머스 프로젝트란 무엇인가?⎟그라운드 시소 서촌

by 포토크리에이터 Bear 2023. 1. 31.

디렉터 리 슐만(@lee.shulman)

 

⎟프로젝트의 시작

  영화 제작자이자 아트 디렉터인 리 슐만 Lee Shulman은 빈티지 슬라이드 필름을 구입하고 마치 작은 창문 같은 필름 속에 담긴 영원한 순간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이윽고 그는 일반인들이 촬영한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수집하여 보존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컬러 필름의 화학물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색상 재현력이 저하되어 원본의 이미지를 점차 잃게 됩니다. 리 슐만은 필름 속에 기록된 집합적인 기억을 보존하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에게 제 2의 생명을 주고 싶다는 의지로 잊혀졌던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하여 어노니머스 프로젝트 Anonymous Projrct 가 탄생합니다.

 

  2017년부터 80만장의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수집한 이 프로젝트는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주로 미국과 영국에서 평범한 이들이 각자 기록한 일상에 주목합니다. 1950년대부터 컬러 필름의 가격이 낮아지고 코닥Kodak에서 소형 필름 카메라를 내놓으며 사진은 대중화를 꽃피우게 됩니다. 크고 무거운 대형 카메라와 묵직한 삼각대를 힘겹게 들고서 사진을 찍던 시절이 지나가고 사회 문제를 조명하는 언론으로서의 기능과 더불어 개인의 기록이라는 일상적 사물의 영역까지 사진이 활용되기에 이릅니다.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여러분은 좋은 사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노출과 구도가 완벽하다면 좋은 사진인걸까요? 우선 ‘좋다’는 감상은 많은 모호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느끼고 말하는 사람의 어투에 따라 의미도 달라지죠. “음, 좋네~” 라면 그럭저럭 괜찮다는 뜻일테고, “와! 좋다!”라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간결하고 분명하게 호감을 표시하는 뜻일 겁니다. 어느 한 편으론 나는 분명히 잘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별로일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창작자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대체 좋은 작품의 기준은 무엇인가?”

 

  어노니머스 프로젝트는 그러한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신이 직접 보고 기록한 소중한 순간들이야말로 진정 좋은 사진이다.” 어노니머스 프로젝트에서 수집한 사진들은 대략 50년의 세월을 거친 사진들입니다. 이는 분명 우리가 현재 시시각각 생산하는 일상 사진과는 다른 시대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어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정서는 변치 않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저 멀리 어디선가 사랑하는 이와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사랑을 전달합니다.

 

어노니머스 프로젝트 전시에는 디렉터 리 슐만의 이러한 코멘트가 새겨져 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선 특별하고 정교한 ‘기술’이란 것이 필요했습니다.
좋은 장비 그리고 복잡한 기술을 동원해야만 촬영할 수 있는 ‘좋은 사진’ 말이죠.
하지만 사진에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아름다운 요소는 촬영자와 피사체 간의 관계에 있습니다.”
- 리 슐만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

  마틴 파 Martin Parr 라는 사진가를 아시나요? 그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최대한 완벽을 배제한 채 사진을 찍습니다. 즉흥성과 우연성은 그가 추구하는 사진의 본질입니다. 기술에 필요 이상으로 몰입하지 않고 자신이 찍으려는 대상이 무엇인지 집중하는 스타일입니다. 리 슐만이 어노니머스 프로젝트를 이끄는 원초적인 이유와 일맥상통합니다.(실제로 그들은 각자의 사진 중 닮은 사진들을 함께 배치하여 공동으로 사진집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왜 사진을 찍으시나요? 10년 정도 사진을 공부하며 직업으로 삼은 저로서도 이 전시를 보기 전까진 이에 대한 답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사진이 좋습니다. 손에 쥔 카메라의 물성,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쾌감, 사진을 살펴보고 보정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게다가 사진은 제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저의 삶에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에 치이느라 사진이 좋은 이유를 오랫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사진이 잘 팔릴까?”를 주로 고민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사진을 하는가?”입니다. 어노니머스 프로젝트의 사진들은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말고 영원히 간직하라고 권하는 듯 합니다. 흘러가고 잊혀질 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누군가를 찍는 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솔직한 행위이지 않을까요?

 

“사진은 우리 인생 이야기입니다. 저는 사진의 접근성과 보편셩을 사랑합니다.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집단적 기억으로서 역할을 계속하게 되겠죠.
저는 이 컬렉션에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위안을 받고 즐거움도 느껴요.”
- 리 슐만

 

⎟사진은 각자의 어노니머스 프로젝트다.

  이 사진 컬렉션 프로젝트는 현대의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 줍니다. 이제는 터치 몇 번으로 카메라를 켜고 손을 들어 올려 간단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SNS에 올라오는 무수한 사진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기록’이 아닌 ‘증명’에 방점이 찍혀있는 현대 사진 문화에 오래된 필름 사진들이 다정히 말을 겁니다. 그저 찍고 끝내는 것이 아닌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카메라와 셔터를 통해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전긍긍하며 답을 알아내지 말고 삶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소중한 순간이 영원하도록 그저 담아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사진이란 우리 각자의 어노니머스 프로젝트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사진은 인류가 개발한 기술 중 가장 다정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 어노니머스 프로젝트

 

⎟올해 놓쳐서는 안 될 전시

  사진을 즐겁게 향유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그라운드 시소 서촌에서 진행 중인 어노니머스 프로젝트 전시를 추천합니다. 아름다운 순간들이 기록된 사진들과 그라운드 시소의 감각적인 전시 기획이 탁월한 구성으로 융합됩니다. 전시 도입부터 마지막 하이라이트까지 최근 관람한 전시 중 경험의 질을 가장 순도 높게 올렸습니다. 전시를 모두 관람한 후에는 다른 굿즈는 몰라도 도록을 구매해 보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제작 퀄리티도 괜찮고 가격도 합리적입니다.

 

  이토록 사진에 진심인 프로젝트가 있다니 포토그래퍼로서 더없이 기쁩니다. 이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져서 언젠가 우리 시대의 사진들도 사진의 본질이라는 시선으로 남겨졌으면 좋겠네요.

 

<어노니머스 프로젝트 : 우리가 멈춰섰던 순간들>

📍 그라운드 시소 서촌

🗓 2022.11.25 – 2023.04.02

📸 iPhone 13 pro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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