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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세브란스 : 단절 ⎟ 고요함이 지배하는 서스펜스 ⎟ 애플tv +

by 포토크리에이터 Bear 2023. 1. 31.

 

개인의 감상과 해석일 뿐입니다.

본 글은 작품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줄거리

  한 여성이 테이블 위에서 누운 채로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스피커에선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헌데 이 여성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고향은 어디인지,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윽고 스피커를 통해 말하던 남자가 방에 들어와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마크'. 그는 그녀의 이름이 헬렌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곳은 '루먼'이라는 회사의 '단절' 층이고 본인과 헬렌은 매크로 데이터 정제팀 소속이라고 합니다.

 

  '루먼'은 정치,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굴지의 대기업이며 '단절' 층에선 특수한 직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직원들은 모두 뇌 안에 기억을 삭제하는 칩을 이식한 상태이고, 지하에 있는 '단절' 층에 들어가면 외부의 기억을 잊게 됩니다. 그렇게 회사에선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은 잊은 채로, 말하자면 또 다른 인격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작 중 캐릭터들의 본래 인격인 외부 인격은 '아우티', 회사에서 근무하는 내부 인격은 '이니'라고 부릅니다.

 

  헬렌은 매크로 데이터 정제팀(이하 MDR 팀)의 팀장이었던 '피티'의 후임으로 들어왔습니다. 헬렌은 계속해서 '단절' 층에 극도로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피티에 이어 팀장을 맡게된 마크, 그런데 어느날 우연한 사건들이 겹쳐 회사의 비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고, MDR 팀에 큰 변화가 찾아 옵니다.

 

 

 

⎟인물들의 역할과 관계

  이 드라마는 이야기의 구성이 대단히 구조적입니다. 허투루 사용되어 휘발되는 캐릭터가 단 한명도 없고, 각자 이야기의 전개와 연출의 의도를 담은 역할에 제 몫을 합니다. 이니들이 밖에선 어떤 사람인지 주인공인 마크 외에는 알려주지 않는 점도 관람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엄청난 반전이 있습니다. 마지막 화에 숨겨둔 사실들을 전부 개방하고 극적인 전개가 시작됩니다.

  극 중 마크 다음으로 큰 비중을 가진 캐릭터는 헬렌입니다. 회사의 시스템과 방침에 익숙해진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헬렌은 자신이 이곳에 납치 당했다고 생각하고 탈출에 필사적입니다. 사실 마크를 비롯한 기존 직원들도 아주 오래 전엔 헬렌처럼 이곳을 거부했고, 반항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암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헬렌의 행동은 관객의 입장에선 거칠게 감금하는 것도 아니고 일만 하는 곳인데 다소 과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헬렌에게 감정 이입을 해보면 그녀는 갑자기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에서 눈을 떴는데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자신에 대한 그 무엇도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1화 초반부터 헬렌이 무지의 공포에 사로 잡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헬렌의 행동이 모두 납득됩니다. 자신은 기억이 지워졌고, 자유 의지를 거부 당한채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 헬렌의 입장에선 이런 생각이 머릿 속에 가득할 겁니다.

 

  이 드라마를 볼 때는 대사가 있는 캐릭터는 모두 눈여겨 봐야 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생각치도 못한 인물이 의외의 장면에서 등장을 하기 때문이죠. 

 

 

 

 

⎟연출과 연기, 그리고 촬영

  이 드라마는 언뜻 단조롭고 잔잔한 작품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심오한 내용을 절제된 연출과 촬영으로 풀어낸 보기 드문 수작입니다. 관리 팀장인 '코벨'은 마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지옥에 대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좋은 소식은 지옥은 인간이 만들어 낸 병적인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란거고,

나쁜 소식은 인간은 뭘 상상하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거야."

 

  이 대사는 드라마 내용의 전체를 꿰뚫습니다. 인간은 상상한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 크게 와닿네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은 지구 상에서 인간을 따라올 생명체가 없지만 정말 뭐든지 만들어 내버려서 재앙이 벌어 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재앙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죠. <세브란스 : 단절>은 불행의 불공정에 대한 메시지를 드라마 전체로 함축합니다. 이름 그대로 외부와는 단절된 층에서 도대체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본인들조차도 모르고 관리자들은 그들이 규칙을 지키도록 감시합니다.

 

  사람을 통제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무엇일까요? 바로 "공포"입니다. MDR 팀의 '딜런'은 광학과 디자인 팀(이하 O&D 팀)을 두려워하고 경계합니다. 그 팀의 직원들은 사람의 내장을 산 채로 뜯어 먹는 식인귀들이며 그들이 한 때 쿠데타를 벌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O&D 팀 역시 비슷한 이유로 MDR 팀이 괴물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있었죠. 니콜로 마키아밸리는 "훌륭한 군주는 민중이 그를 선망하면서도 두려워해야 한다." 고 했습니다. 공포는 정치에서 종종 사용되는 감정입니다. 떨어져 있는 팀들이 서로 교류해서 문제를 일으키면 통제하기 어려우니 공포를 심어서 교류를 차단합니다.

 

  거기에 이니들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편람 외에는 그 어떤 글도 읽거나 볼 수 없습니다.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그 편람은 '루몬'의 창립 가문인 '이건' 가문의 업적을 늘어놓은 것 뿐이었죠. 엘리베이터엔 특수한 장치가 있어서 회사에서 글을 적어서 나갈 수도 없습니다. 기계 장치를 최소화하기 위해 내부 기록용 사진이나 영상도 모두 필름으로 촬영합니다.

 

  촬영 이야기를 해볼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수평수직과 간결함을 유지합니다. 이런 일관성은 구도만 챙긴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명암의 대비와 색감의 조화에 동선까지 신경써야 할 요소가 정말 많습니다.

 

이런 화면 구성, 정말 사람 미치게 하네요.

공간은 중앙 소실점으로 시선을 모이게 하는데 인물들의 시선은 소실점의 방향과는 반대입니다.

그래서 이 시선의 흐름 한 가운데 들어온 인물이 가진 힘을 느끼게 해줍니다.

한 장면일 뿐인데 신경을 많이 썼다는게 느껴지죠? 다른 장면도 볼까요?

 

'루먼'의 전경입니다. 데칼코마니 구성이죠. 직선과 유선, 플랫한 톤, 모노크롬에 가까운 색감까지

'안드레아 거스키'의 사진이 생각납니다.

거기에 몇몇 장면에선 스탠리 큐브릭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루먼'의 1층 내부입니다. 구성과 앵글의 안정감이 시몬스 침대급이네요.

마치 수족관에 갇힌 듯한 느낌도 듭니다. 버드아이뷰는 이렇게 쓰는거죠.

 

이런 삼각형의 대립 구도도 새롭죠? 공간의 구조를 활용하는 방식도 재밌습니다.

 

MDR 팀의 사무실 모습. 인물의 시선, 화면 구성, 라이팅, 색감까지 거슬리는게 전혀 없습니다.

포토그래퍼로써 보는 내내 행복했네요.

 

 

  이 작품은 장면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위 사진은 오프닝 시퀀스의 한 장면인데요. 실사 영상은 아니지만 오프닝부터 드라마의 내용과 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각적인 만족감을 이만큼이나 충족시켜준다는건 감독과 스텝이 촬영에 대해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 수 있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블루와 그린으로 이루어진 컬러 톤, 줄곧 대비를 밋밋하게 주지만 적재적소에 강하게 주고, 선과 시선의 이동을 신경 쓴 동선과 촬영까지 시각 연출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작품이 교보재 역할을 해줄 수 있겠습니다. 촬영과 화면 구성으로 어떻게 감독의 의도를 연출하는지 다음 기회에 다뤄보겠습니다.

 

  <세브란스 : 단절>은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배우의 연기도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헬렌을 제외하면 초반에 잔잔한 느낌으로 캐릭터가 그려집니다. 회차가 진행될 수록 캐릭터들의 인격이 점점 더해지고 마지막에 폭발하는 감정이 인상 깊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인 마크를 연기한 '애덤 스콧' 배우의 연기가 아주 훌륭합니다. 전에 관람한 영화에서 깐족대는 연기가 인상 깊었는데 이렇게 비관과 우수에 찬 캐릭터도 잘 어울리네요. 

 

 

 

⎟총평

  여러 OTT의 드라마를 도전해보는 중입니다. 작품마다 매일 챙겨 보기도 하고 중도 포기하기도 하는 와중에 찾아낸 보물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전개로 나아간 후 입이 떡 벌어지는 마무리로 시즌 1이 끝났는데요. 시즌 2가 어떻게 시작할 것이고 어떤 이야기로 나올건지 예상이 전혀 가질 않네요. 이런 작품은 예상을 하는게 시간 낭비입니다. 그저 기대하며 기다리는게 최선이죠. 벤 스틸러 배우가 가진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놀랍네요. 부디 다음 시즌도 이 멤버 그대로 이어 갔으면 합니다.

 

이미지 출처 : Apple 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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