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sight

저작권 침해 판결을 받은 앤디 워홀

by 포토크리에이터 Bear 2023. 6. 19.

 

창작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

 지난 5월, 미국 대법원은 앤디 워홀의 1984년 실크스크린 초상화 시리즈의 원본 이미지로 린 골드스미스가 촬영한 팝스타 프린스의 사진을 사용한 것을 7대 2로 저작권 침해라고 판결했습니다. 따라서 골드스미스는 워홀의 작품 <오렌지 프린스>에 대한 라이선스 비용의 일부를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 워홀 재단과 미술사학자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인 리처드 메이어는 워홀의 작품이 '공정 이용(fair use)'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변형했다고 주장합니다. 

 

 

❗️공정이용이란? 

표현을 자유의 이름으로 특정조건에서 저작물의 각색을 허용하는 원칙.

 

 

 리처드 메이어의 주장에 따르면 워홀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저작권(copyright)이 아닌 복제권(right to copy)에 관심을 가졌고, 이는 워홀에게 창작 방식인 동시에 삶의 방식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워홀은 1963년 한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이 나 대신 그림을 그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모든 작품의 제작을 타인에게 맡긴 것은 아니지만 자르기, 찍기 등 물리적인 작업 외에도 작품 구상, 제목 짓기와 같은 창작 과정의 일부를 친구나 조수에게 맡기기도 했습니다. 워홀에겐 이와같은 일화가 몇가지 더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그릴까?'라고 물어보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는가 하면, '팝'이 예술가의 독창적인 비전보다는 외부의 아이디어나 이미지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로 "팝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배우를 고용해 전국 순회강연에 자신의 역할을 해달라며 대신 내보낸 일도 있었습니다. 

 

 이어 리처드 메이어는 워홀은 누구보다도 독창적인 방식으로 독창성의 개념을 해체한 사람이라며 현대 예술가들이 디지털 렌더링, 기존 사진과 물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지금이 바로 워홀이 예견한 미래라고 합니다. 또한 해당 재판을 담당한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의 의견을 인용합니다.

 

"워홀은 원본 자료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 때문에 현대미술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수프 통조림, 브릴로 세제 상자, 마릴린 먼로, 프린스 등 워홀의 작품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나아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는데, 워홀의 작품이 오늘날 미술관 뿐 아니라 우리 예술 문화 전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엘레나 케이건

 

 

 창작과 작품에 대한 워홀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일화가 더 있습니다. 1967년, 캠벨 수프 컴퍼니(Campbell Soup Company)는 워홀의 유명한 수프 통조림 그림을 담은 책 출간을 앞두고 있던 출판사 랜덤하우스(Random House)에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 서한에는 캠벨 수프 컴퍼니는 캠벨 로고롸 워홀이 용도를 변경하여 사용한 로고 사이에 저작권 충돌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리처드 메이어는 실제로 워홀의 작품이 캠벨 수프 컴퍼니에 도움이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사항으로 워홀이 로고 그림을 실제 통조림에 그려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명시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워홀이 캠벨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워홀은 기꺼이 해당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워홀의 팬들은 공개 행사에 캠벨의 통조림을 가져와서 사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통조림이 워홀을 연상시키는 물건이 되어 워홀 작품의 기성품 버전으로 기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원본과 작품이 자리를 맞바꾸게 된 사례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워홀의 이러한 가치관은 현대에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AI를 활용한 창작물이 무수히 쏟아지는 시점에 제도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최근 그래미 어워드는 AI로 만들어진 음악은 참가자격을 주지 않는다는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간단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창작물에 고유한 저작권을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습니다. 리처드 메이어는 워홀이 저작권 법에 대해 충분히 통달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신경쓰지 않았을거라고 합니다. 법을 준수하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 아니기에 그럴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윤리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예술은 제도가 아닌 경계에서 탄생한다는 워홀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댓글